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명성황후/호칭에 관한 주장들 (문단 편집) ===== 순종실록 부록의 고종태황제 행장 중 추책(追冊)에 관하여 ===== 명성황후 추존론자들이나 대한민국 역사관련 기관에 소속된 학예사들이나 편수연구사들이 바로 윗 단에 언급한 대례의궤, 경효전일기,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 명성황후 어제행록, 선원보략수정의궤(1902)에 명기된 "왕후책황후(王后冊皇后, 왕후를 황후로 책봉하였다)의 책(冊)을 추책(追冊)의 약자로 오인하여서, 명성황후는 추존되었다고 주장하는 근거 중에 하나가 바로 순종실록 부록에 실린 고종태황제 행장이다. 왕이나 황제가 붕어한 후에 발인하기 전에 그 일생일대를 정리한 것을 행장이라고 하는데, 고종태황제의 행장은 순종실록 부록 10권, 순종 12년 3월 4일자로 기록되어 있다.[[http://sillok.history.go.kr/id/kzc_11203004_004]] 여기에서 국문번역문이 " 명성왕후(明成王后)를 황후로 추책(追冊)하고 왕태자를 황태자(皇太子), 왕태자비를 황태자비(皇太子妃)로 하였다."로 되어 있고, 원문으로는 "追冊明成王后爲皇后, 王太子爲皇太子, 王太子妃爲皇太子妃"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국문으로도 오역이고, 원문을 옮긴 것도 완전히 틀린 것이다. 그런 오역을 모르고 원본도 찾아보지도 않은 상태로, 대한민국 역사관련 기관들에 종사하는 학예사들이나 편수연구원들은 국사편찬위나 고전번역원에서 인터넷으로 제공되고 있는 조선왕조실록 웹사이트에서 검색만 하고서는 추존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이 너무나도 안타까우면서도 식민사관에 대한민국 역사관련 기관들이 얼마나 자신들도 모르게 찌들어 있는가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뿐이다. 그 근거로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고종태황제행장"의 해당 부분 원본 이미지를 아래에 첨부하고 설명하겠다. [[파일:020 - 고종태황제행장 원본 이미지, 장서각 소장본.jpg]] 우선 위 사진의 맨 오른쪽의 원문 문장을 먼저 설명을 해야 왜 국문으로도, 원문으로도 완전한 오역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기에 먼저 설명한다. "進號大君主陛下, 王大妃殿爲王太后陛下, 王妃爲王后陛下, 王世子爲王太子, 王世子嬪爲王太子妃" 이를 국역하자면, "왕을 대군주 폐하로, 왕대비 전하를 왕태후 폐하로, 왕비를 왕후 폐하로, 왕세자를 왕태자로, 왕세자빈을 왕태자빈으로 진호(進號) 즉 호칭을 높였다"로 번역된다. 이 문장을 먼저 예를 든 것은 한문 원문의 번역상 "진호(進號)"는 "진호(進號)" 다음에 나오는 각 문장에 동시에 걸쳐지는 동사의 역할이라는 점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다시 "追冊明成王后爲皇后, 王太子爲皇太子, 王太子妃爲皇太子妃"라는 문장만 떼어서 국문으로 번역하면, 추책(追冊)이라는 동사는 "追冊" 이후의 모든 문장에 동시에 걸쳐지는 역할이 됨으로, "명성왕후를 황후로 추책하고, 왕태자를 황태자로 추책하고, 왕태자비를 황태자비로 추책하였다" 또는 "명성왕후를 황후로 왕태자를 황태자로, 왕태자비를 황태자비로 추책하였다"로 번역이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당시의 황태자였던 순종황제와 황태자비인 순정효황후 민씨는 버젓이 살아있는 사람이었는데, 그럼 살아있는 사람을 죽은 사람을 높이는 추존의 의미인 "추책(追冊)"을 했다는 번역문이 되어 버리기에, 현재 인터넷 조선왕조실록에서 제공되고 있는 국역문과 한문원본은 모두 틀린 오역이자 틀린 표점표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어떻게 읽고 번역을 해야 올바른 것이 되겠는가? 우선 한문 원문의 표점을 祭圜丘, 卽皇帝位'''。''' 改國號曰大韓, 尊王太后爲明憲太后, '''追冊明成'''王后爲皇后, 王太子爲皇太子, 王太子妃爲皇太子妃."에서 "祭圜丘, 卽皇帝位''',''' 改國號曰大韓, 尊王太后爲明憲太后, '''追冊, 明成'''王后爲皇后, 王太子爲皇太子, 王太子妃爲皇太子妃."로 바꾸고 한 문장으로 국역해야 올바른 번역이 된다. 제대로 번역하자면, "원구단에서 천지의 신께 제사를 올리고 난 후에 황제의 위에 등극하면서 국호를 바꾸었는데 대한이라고 정하였으며, (국호를 대한으로 바꾸신 황제께서는) 왕태후를 명현태후로 존봉(=직첩을 높여 책봉)하고 '''동시에''' 또는 '''더불어서''' 명성왕후를 황후로 왕태자를 황태자로 왕태자비를 황태자비로 '''책봉'''하였다"이다. 우리가 음식점에서 추가로 뭐를 달라고 할 때의 "추가"라는 단어의 한자어를 보면 "追加"이다. 살아있는 왕태자와 왕태자비를 죽은 사람 취급해서 책봉했다고 할 수 없는 만큼, 고종태황제 행장의 추책(追冊)의 추(追)는"더불어서 또는 동시에 또는 연달아서"라고 번역해야 올바른 것이다. 한자 사전에서 추(追)의 뜻을 찾아보면, "잇닿다" 또는 "서로 이어져 맞닿다"라는 뜻이 있기 떄문에, 왕태후를 명현태후로 존봉하고 '''이어서 - 추(追)''' 왕후를 황후로 왕태자를 황태자로 왕태자비를 황태자비로 '''책봉 - 책(冊)'''하였다"로 번역되어야 올바른 번역이 되는 것이다. 물론 역사적 사실은 명현태후로 존봉한 것이 가장 나중의 일이지만 왕실의 웃어른을 먼저 배치하여 기록하는 장유유서 예법에 비춰봤을 때에, 명현태후의 존봉 사실이 가장 먼저 나온다고 해서 이상한 것도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위에서 언급하였던 고종실록 황제등극기사와 대례의궤와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 선원보략수정의궤(1902), 경효전일기, 명성황후 어제행록 등등의 왕비책황후(王妃冊皇后) 또는 왕후책황후(王后冊皇后)의 책(冊)은 책봉(冊封)의 책(冊)이지 추존(追尊) 또는 추봉(追封) 또는 추책(追冊)의 의미도 없으며, 추존 또는 추봉 또눈 추책의 약어로서의 책(冊)도 아님이 역사 서지학적인 비교 분석법에 의해 분명해졌다. 따라서 명성황후의 황후 책봉을 추존이라고 기록한 하단에 설명할 선원보략수정의궤(1902)항목 내의 승정원일기와 고종실록 총록의 기록은 역사 서지학적 비교연구결과 오류인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